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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 5층 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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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적인 내용 몇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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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건립시기:7세기 중반 크기:현재 높이 8.8m 국보 9호 특징:백제 석탑의 정형화된 모습을 볼 수 있는 대표적 석탑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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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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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석탑의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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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탑은 그 재료에 의하여 목탑, 전탑, 모전석탑, 청동탑, 금동탑, 석탑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목탑은 전쟁등으로 모두 타버리고 고대에 만들어졌던 목탑은 실물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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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 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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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정림사지는 백제인에 만든 2개 남은 석탑중 하나가 위치한 절터이다. 백제 시대에는 이
절터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발굴 작업 중에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기와 조각에 정림사라는 사찰 명칭이 있어 그렇게
불리울 뿐인데 삼국유사에는 정림사가 출현하지 않아 삼국시대의 이름은 아니다. 그러면 탑은 분명 백제인이 만든 탑이고 왕궁이 있던 곳에
세워진 사찰이니 상당한 규모였을 이 절의 백제 이름은 무엇일까? 탑이 말을 하지 않는한 어찌 알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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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 5층 석탑은 미륵사터 석탑 보다 규모가 1/3정도 이다. 미륵사탑이 목조 건축 양식을 그대로 돌로
표현해 놓았다면 정림사지 석탑은 그 형상미를 한단계 승화시켜 단아하면서도 절제된 석탑의 모범을 보여준다. 한국 석탑은 이후 정림사
5층 탑의 구조를 그대로 계승발전시킨다. 따라서 이 탑은 한국 탑의 모범이며 그 기준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신라는
분황사 모전석탑으로부터 의성 탑리 오층석탑과 감은사터 오층석탑 및 고선사터 삼층석탑을 거쳐 불국사 삼층석탑에 이르러 석탑양식의 신라 형태가
정착되어 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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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보 제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데 한 때는 1층 탑신에 새겨진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신라 연합군과 함께
백제를 점령한 후에 그일을 기념하기 위해 남긴 비문으로 인하여 소정방이 세운 탑으로 오해되었으며 또한 평제탑(백제를 평정한 탑)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간의 학술 조사와 연구 결과에 의하여 그 오명을 벗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정림사탑은 백제의 패망 역사를 잘
보여준다. 탑의 1층 면석에 있는 소정방의 백제 평정 내용이나 겉에 남아있는 그을름이 그것이다. 나당 연합군에 의해 부여가
점령당했을 때 1주일 밤낮으로 불길이 치솟았다고 하니 그 참상이 어떠했겠는가? 그때 입은 상처를 정림사석탑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탑은 그 때 그 모습을 생생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탑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 당시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다면 소정방의 정이 자신의 몸에 치욕의 역사를 기록할 때 그 고통을 표현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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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미술
가운데 양과 질에서 가장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탑파와 불상이다. 이는 탑파와 불상이 불교의 예배 대상으로서 불교 신도들의 신앙과
정성이 모두 이 두곳에 결집되었던 때문이다. 탑파는 불교의 교주인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하였기 때문이며 불상은 직접
예배를 올리는 대상인 때문이다. 그러므로 탑파와 불상이 가장 뛰어난 불교 미술로서 한국의 고대 미술을 대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