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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이야기

무등산 2

무등산의 유래

17832

 

무진악(武珍岳)

광주의 옛 이름을 무진주(武珍州) 또는 무주(武州)라 해서 이 고을의 진산인 무등산도 일찍이 무진악(武珍岳) 또는 무악(武岳)으로 부른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광주는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다가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는데 이때 백제를 3주로 나누어 그 하나를 무진주(武珍州, 一云 奴只)라 하였으며 광주가 백제에 속한 시기는 4세기 근초고왕(近肖古王, 346~375)때부터인 것으로 보고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전국을 9주로 나누어 도독을 배치하면서도 계속 무진주와 완산주(지금의 全州)는 그대로 불렀다. 그런데 757년(경덕왕 16년)12월에 경덕왕이 고을 이름을 중국식인 외자로 고치면서 무진주는 무주로 완산주는 완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무주가 광주(光州)로 바뀌게 된 것은 940년(고려 태조 23년)3월에 여러 주(州), 부(府), 군(郡), 현(縣)의 명칭을 바꾸었을 때부터이다. 그 뒤에도 1362년(고려 공민왕 11년)부터 1773년까지 무진주(茂珍州)라 하였는데 ‘武’를 피하고 ‘茂’로 바꾼 것은 고려 혜종(943~945)의 이름에 ‘武’자가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조선시대에도 1430년(세종12년)부터 1451년(문종1년)까지 다시 무진군(武珍郡)이라 불렀던 때가 있었다.
백제시대에 무진 혹은 노지라 이름을 쓰게 된 것은 원래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이란 옛 지명에서 연유한 것인데 未冬은 습지를 뜻하는 우리 옛 말인 물들, 물둑(水場), 무들, 무돌을 차자표기한 것이다. 즉 未冬이라고 적고 무돌이라 발음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백제시대에 와서 무돌의 ‘무’는 한자음의 ‘武’로 표기하고 무돌의 ‘돌’은 뜻으로 볼 때‘珍’이 되므로 무돌을 무진(武珍)이라 하고 광주를 무진주(武珍州)라 했으며 무등산을 무진악(武珍岳)이라 한 것이다.
‘무돌’은 또 ‘무지개를 뿜는 돌’이란 뜻을 지닌 순우리말의 조어(造語)로 보기도 한다. 옛사람들은 지금보다도 낱말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썼다. 죽고 사는 것을 ‘죽사리’라고 했는데, 그것은 동사 ‘죽살다’에서 온 것이다. 갈대밭으로 이루어진 산을 ‘갈뫼’라고 했다. 따라서 조어 ‘무돌’의 무등산은 무지개처럼 곱고 아름다운 돌산이란 뜻도 된다. 무등산을 서석산(瑞石山)이라고 불렀던 연유도 ‘무돌’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겨진다. 옛사람들은 돌을 무척 신성시했고 신앙의 대상물로 섬겼던 것으로 미루어 서석산이란 글자 그대로 상서로운 돌산이란 뜻이라 하겠다.

서석산(瑞石山)

무등산은 대체로 육산(肉山 또는 土山)으로 되어 있으나. 그 특색은 오히려 웅장한 암석미에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서석대, 입석대, 규봉 등이다. 정상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에 서석대가, 남쪽에는 입석대가 위치하고 있는데, 특히 서석대는 마치 수정 병풍을 둘러친 것처럼 아름다운 직절상(直截狀)의 석조(石條)로 이루어진 총석(叢石)의 집단이며 이곳을 ‘서석의 수정병풍’ 이라고도 한다.1)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부른 것은 고려때의 일로 추측된다. 무진주를 광주로 고쳐 부른 것은 940년(태조 23년)인데, [고려사 지리지]는 ‘무등산’이라 적고 ‘혹은 무진악이라고 하고 혹은 서석산이라고 한다(一云 武珍岳, 一云 瑞石山)’고 그 명칭의 유래를 기록하고 있어 서석산이란 이름이 이때부터 무등산의 별칭 또는 애칭으로 함께 불려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은 [고려사]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 ‘이 산 서쪽 양지 바른 언덕에 돌기둥 수십개가 즐비하게 서 있는데 높이가 가히 백척이나 된다. 그래서 산 이름을 서석이라 했다(山西陽崖 數十櫛立 高可百尺 山名瑞石 以此)’ 라며 서석의 유래를 밝히고 있다.
송강 정철은 성산별곡에서 ‘천변(天邊)에 뜨는 구름 서석을 집을 삼아’라 하였고, 제봉 고경명도[유서석록(遊瑞石錄)]을 남겨 무등산을 예찬하고 있어 서석산은 조선시대의 문인들 사이에서도 즐겨 쓰였던 이름임을 알수있으며 현재 까지도 무등산의 별칭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등산에는 현재 우리가 서석이라 부르는 서석대 말고도 입석대, 규봉 , 그리고 정상 3봉을 비롯한 의상봉, 새인봉, 중봉 등 직립형 돌무더기가 곳곳에 흩어져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돌무더기를 우리 조상들은 ‘선돌’ 또는 ‘신돌’ 이라 불렀던 것이니 뜻을 취하면 ‘立’이 되고 음을 취하면 ‘瑞’가 되었던 것이다.2)
부정(不淨)을 피하고 성지를 예찬하던 고대의 풍습은 이처럼 신체(身體)에 비길 수 있는 천연의 석경(石景)을 상서롭고 신성한 뜻으로 받아들여 ‘서(瑞)’로 대하였던 것이니, 무등산의 돌 경관은 어느것이나 서석이요 입석이지 따로 구분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서석의 절경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이름하였던 것은 과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당산

광주의 옛 어른들은 흔히 무등산을 ‘무당산’ 또는 ‘무덤산’이라고 불렀다. 그중에서도 무당산이라 부르는데 반드시 어떠한 연유가 있었을 것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무당골’ 이라 부르던 골짜기가 증심사 뒤쪽에 있었고 깃발을 나부끼는 무당의 움막이 듬성듬성 서 있었다. 곳곳에서 무당들의 내림굿이 펼쳐지기도 했었다.
‘무당산’은 ‘무당’에서 불려진 것이며 또한 무등산의 신령스러운 기운과 영험함을 믿는 민중의 믿음을 따라 이 산을 ‘무당산’이라 불렀음직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도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기 전에 있었던 원시종교 속에서 싹텄던 ‘당산’의 신앙이 곧 무등산을 ‘큰당산’으로 삼게 했고, 그것을 ‘무당산’이라 불렀을 것이다.1) 이렇게 당산을 신성시했던 시절에 무등산을 무당산으로 불렀던 이유는 곧 이 산을 신산(神山)으로 보았던 옛사람들의 토속신앙에서 연유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무덤산

무등산은 동서남북 어디에서 보나 형상이 비슷하고 뒷면, 즉 등성이에 변화가 없다. 홑산으로 이루어진 그 모습이 마치 무덤처럼 둥글넓적하게 생겼다고 하여 속칙 ‘무덤산’이라 했을 법하고 또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늘 덤덤하고 무덤덤한 심성을 상징하는 산이라 해서 붙여진 속칭일수도 있다. 그러나 육당(六堂)은 부정을 몹시 싫어하는 우리나라 풍속으로 봐서 이렇게 큼직한 신역(神域)에 “무덤산”이라는 흉측한 명칭을 썼을 것 같지 않다면서 ‘무당’이 와전된 것에 불과할 것1)이라고 했으며, 노산도 예부터 이고을 사람들이 무등산에 무덤만 써도 부정탄다고 여기며 신성시했던 점2)을 들어 ‘무등산’의 와전3)으로 보고 있다.

무정산

무정산은 조선왕조를 창건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1335~1408)가 왕명에 불복한 무정한 산이라 지칭한데서 연유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 여러 명산대천에 왕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무등산 산신만은 그 소원을 거절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로 그는 나라를 세운 뒤에도 국내 명산의 산신들에게 제사를 올려 왕업이 수백대에 이르도록 이어지를 빌었고, 또 자기 손에 죽은 고려말 명신(名臣)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자주 산신에게 빌었다고 한다. 특히 나라에 가뭄이 계속되자 왕명으로 남쪽의 명산 무등산에 기우제를 지내게 했으나 무등산신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비가 내리지 않았으므로 왕명에 불복한 무등산 산신을 멀리 지리산으로 귀양보내고 이 산을 무정한 산이라 하여 무정산(無情山)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국여지승람]에 ‘無等山神祠 新羅爲小祀 高麗致國祭本朝春秋令 本邑致祭’라 적어 고려 떄까지는 나라의 제사를 모시다가 조선조에 와서는 산신의 격을 낮추어 고을제(邑祭)로 지내게 한 사실을 두고 이러한 전설이 전해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무정산’ 역시 무등산에서 와전된 말일 것이다 생각된다.

무등산(無等山)

무등산이란 명칭은 서석산(瑞石山)과 함께 고려 때부터 부른 이름으로 ‘무돌’, ‘무진’이라 했던 것이 무등산으로 바뀐 것이다.
무등산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는데,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무등산의 ‘무등’은 앞서 적은 바와 같이 ‘무돌’의 이두음인데, 이 ‘무돌’에는 옛 농경사회의 보편적 지명인 ‘물둑(水堤)’이라는 뜻과 순수 우리 옛말의 조어인 ‘무지개를 뿜는 돌’이라는 뜻에서 연유했다는 설이 있겠으나 이미 ‘무당산’ 대목에서 말한 대로 ‘당산’과 비슷한 음을 따서 한자로 나타냈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노산은 이 산이 불교적 영장(靈場)이 된 뒤에 불교적인 가치를 설명한 이름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불교사전(동국역경원 간)에 의하면 ‘無有等等’은 부처님네는 세간의 모든 중생과 같지 않으므로 무등(無等)한 것이요, ‘無等等’은 부처님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서 견줄이가 없다는 뜻이라 하니 결국 무등산은 불교의 이 말을 빌려다 이름으로 삼아 불교적 가치를 더욱 높인 것이라고 하겠다.
과연 이 주장에 걸맞게 무등산은 불교와 인연이 적지않다. 곳곳에 수많은 사찰과 고승들의 전설이 서려 있고, 산의 경관이 좋은 곳마다 불교적 명칭들이 남아있다. 지왕봉을 비로봉, 인왕봉을 반야봉이라 부르기도 하며, 삼존석(觀音, 如來, 彌勒)이나 의상봉, 윤필봉, 규보의 법화, 설법, 능엄 등 여러 대(臺)의 이름에서도 이 사실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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